마마마 전력 60분 14
집에서 놀기
"마도카, 방학이라고 집에만 있음 안 좋아. 밖에 나가자."
「그치만 바깥 추운걸…….」
전화상에서도 네가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모습이 절로 연상될 정도로 불평스런 말투다. 투덜투덜, 평소의 너라면 이렇게까지 심한 말을 하진 않을텐데. 미키 사야카의 나쁜 버릇이 옮겨붙은 것 마냥. 화가 나기보단 그저 안타까워서, 요근래 상영하는 영화나 네가 좋아할만한 카페에 대해 말해본다. 이정도로 끈질긴데도 너는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다. 평상시면 단순한 구슬림에도 좋다고 따라나설 너인데. 몇몇 장소와 음식, 흥미거리 소개에도 너는 '흐응'하고 길게 말꼬리를 늘릴뿐 따라나설 생각은 없는 듯 하다.
더이상 너를 꾈만한 꾀가 없다. 초조해져서 전화끈을, 내 심정처럼 빼빼꼬인 그 끈을 검지손가락에 넣고 끼어 돌린다. 시계의 긴침이 2를 가리킨다. 똑딱똑딱, 군기잡혀 딱딱 움직이는 초침이 얄밉다. 초침이 12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세세하게 움직이는 분침을 붙잡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아, 겨울이라 해도 일찍 지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꼭 너를 만나고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따라 너를 괴롭혀서라도, 너를 괴롭게해서라도 만나고 싶다.
내가 네 철벽같음에 앓아버려 입을 다물자, 너는.
「지금 우리집에 아무도 없다?」
의미모를 나는 전화상이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넌 그걸 직접 본 것 처럼, 작은 소리로 '히히' 웃는다.
「오늘 하루종일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입을 다문다. 그러나 너 역시 앓고 있는지 알 길 없다. 나는 조용히 그 말을 곱씹다가, 훗하고 웃음을 겨우 삼키고 은근한 말투로 물어본다.
"그럼 너희집에서 놀아도 될까?"
말은 없으나 네가 긍정한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침묵이라 나는 확연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곧 갈게. 마도카.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대 이름을 속삭이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네 집 앞에 들어서기 전에 꼭 문패를 본다. 카나메 마도카. 카나메 준코와 카나메 타츠야 사이에 있는 그 예쁜 이름. 손가락으로 조심히 훑고서야 네 집 대문을 지난다. 일종의 통과 의례와 같다.
띵동띵동, 한 번 누르는 걸로는 성이 안 차서 두 번 누른다. 두어 발자국 떨어지면 바깥쪽으로 문이 활짝 열린다. 교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는 너는 오랜만인 것 같다. 얼마나 방학 동안 안 나왔으면, 쓴웃음이 난다.
"어서와! 호무라 쨩!"
"실례하겠습니다."
아무도 없데도, 라며 너는 신발 정리하던 내 손을 잡아 이끈다. 신발은 결국 한 쪽만 바르게 정리된 채로 팽겨쳐진다. 잡아 이끄는 네 손이 따뜻하다. 내 손이 찬건지. 하긴 언제나 네 손이 따스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따뜻한 손'이 된 적이 없다.
내 방에 도착하자, 너는 이미 두사람 몫의 차를 준비해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훈훈한 찻내가 좋았다.
"저, 호무라 쨩. 냉증이야?"
언제나 좀 찬 것 같아서, 라고 네가 덧붙인다. 내 손을 가져다 만지작거리는 네 손이 따스하다. 냉증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름에도 뜨뜻한 네 손이나 달궈진 네 목덜미에 손이 풀린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도 네 손이 내 냉을 녹이고 있다.
풀리는 느낌, 네 기운이 전해지는 느낌, 나쁘지 않다, 따뜻하다는 건, 그걸 느낄 수 있는 내 손의 냉증이라는 것도.
"여자애가 냉증 같은 거 있으면 안돼. 으음. 좋은 차가 있으려나."
"손이 안 차면 이렇게 마도카가 안 만져줄거잖아?"
실언이었던 걸까. 네 뺨이 달아오른다. 내 손을 쥐고 있던 네 손이 뺨으로 올라간다. 온기가 없는 다른 편 손으로, 나는 네 다른 한쪽 뺨을 만진다. 손보다야 뜨겁다. 걱정스런 눈으로 보니 네가 더 붉어진다.
"마도카?"
너는 말 못하고 끅끅거린다. 우는 투라기보단 뭘 어째야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서너살 먹은 애같다. 나도 뭘 어째야할지 몰라서 네 뺨만 어룬다.
순간 너, 내 몸을 밀어제친다. 가만 시선을 내리고 있던 네가 벌떡 나를 밀어트렸다. 나는 맥없이 바닥에 눕는다. 네가 날 밀면서 두 손목을 꽉 붙잡아,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다. 아프다. 아무리 나라도 화가 나서, 좀 찡그리며 널 노려본다. 그런데 너의 표정, 의외다.
"호무라 짱은 일부러 그러는거지?"
울상인 듯도, 화난 듯도 보이는 묘한 표정이다. 입술을 한껏 깨문 게, 빨갛게 물들어 당장이라도 피가 툭하고 터져나올 것 같다. 네 표정에 도리어 내 화가 누그러진다. 뭔진 몰라도 어영부영 변명이라도 해 이 상황을 빠져나갈까 입을 여는데.
"미안, 마도……."
너는 내 입술을, 아까까지만해도 자기 이로 끊을 듯 괴롭히던 입술을 밀어붙인다. 너는 아까부터 밀어붙이기만 한다. 나는 아까부터 당황스럽기만 하다. 네 따스한 입술이 닿는다. 나는 입술마저 냉한 것인가.
"바보같은 호무라 쨩."
맞붙인 네 입술이 말하기 위해 달싹이더니, 달싹이다 열린 채다. 무언가가 기어나와 내 입술을, 꽉 닫친 사이를 살살 풀어헤친다.
풀리는 느낌, 네 기운이 전해지는 느낌, 나쁘지 않다. 나는 결국 입을 열어 그 무언가의 침입을 허락하고야 만다. 얽히는 내, 네 혀가 참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