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마 전력 60분

마마마 전력 60분 15

연성하는 테사츄 2015. 1. 11. 23:05

여행 



  너는 대나무 대에 얇은 천을 덧대어 만들어진 쇼파에 엎드려, 발을 쭉 뻗어 팔걸이 높이 걸치고 등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너. 독자인 너도, 읽던 책도 더위에 지쳐버려 아래로 떨구고 까닥이지. 오른손가락 검지를 책갈피처럼 꼭 끼워넣고, 엄지와 중지로 책을 지지한 채. 표지가 얇고 부드러운 그 책은 네 손아귀에 딱 맞아서, 여름날 태빛결에 맞춰 살랑살랑. 그 규칙적인 움직임이 왠지 강아지 꼬리 같다고 생각하며.

  내가 "호무라 짱"하고 부르면 너는 고개를 들어올려. 그 덕에 위로 올라가 있던 옷이 스르륵 흘러내려, 내가 직접 만든 그 새하얀 원피스가 하늘하늘한 게 참 어울려. 

  "여행가자. 덥잖아." 내 즉흥적인 말에 너는 여러 반론을 내.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둥, 지금 시즌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둥, 생활비도 아슬아슬한데 무슨 생각이라는 둥. 아아, 시끄러, 시끄러! 내가 네 입을 살짝 틀어막으면, 그 미운 입술에 입을 맞추면 곧바로 새빨갛게 변해선 대거리하던 너는 어딜 갔는지. "후훗."하고 코웃음 치면 너는 내가 꼴보기도 싫은 듯, 쾅! 버릇없이 문을 닫고 나갈테지만.

  며칠 후 너는 큰 지도를 들고 나와. "마도카, 잠깐 이리와봐." 아이스크림을 물고 선풍기 앞에 착 달라붙어 있던 난 "싫어, 호무라 짱이 와." 어리광 부리지. 착한 너는 그 큰 지도를 들고 여까지 걸어와. 물고있던 아이스크림은 제시간에 먹지 못해 뚝뚝 단물 흘리며 떨어지지. 너는 몇 곳,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지명을 손가락으로, 읽던 책에 책갈피 대신 끼어넣었던 검지로 쓱쓱 가르켜. "응?" 갸웃하자, 너는 답답하다는 듯 내게 일러줘. "여행계획 말야. 전에 가고싶다며." 너는 그런 애야. "후훗."

  나는 네 그런 점이 귀여워서, 너무나도 버틸 수 없게, 못될 정도로 귀여워서 꽉 껴안아버려. 너는 내 힘에 밀려나지. 질긴 소재로 만들어진 전국지도는 찢어지는 일 없이 조금 구겨지고, 최후까지 남아있던 아이스크림 조각은 네 어깨에 찰박하고 내려앉아. 넌 나를 떼내려 바둥거리지. 나는 좀 더 힘을 주어 너를 완전히 깔아눕혀.

  찰칵하고 너와 나, 그리고 그 중간 지점을 맴돌던 선풍기가 작동을 멈춰. 해두었던 타이머가 멈춘걸까, 하고 보면 타이머바늘은 아직도 1시간이나 더 남았어. 서로 숨을 죽였음에도 시계 똑딱이는, 언제나 우리의 조용한 밀회를 괴롭히던 그 소리도 없어. 내 밑에 깔려있는 건 버클러를 어린애처럼 꽈악 끌어안고 있는 너. 

  네 왼손목을 새카만 버클러가 우왁스럽게 잡아먹은 것 같아. 나는 그게 미워서 콱 잡아내 뜯어내버려. 없애버려. 시간은 다시 흐르고, 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울상. 뭐때문인지 몰라 나는 능력을 멋대로 운용해, 시간을 멈춰. "호무라 짱이 하지 않아도 원한다면야, 내가 언제든지 얼마든지 멈춰줄텐데 몸도 약한 애가 왜 그리 악을 쓰는거야?" 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려. "그런 게, 그런 게 아니란 말야." 하며.

  으음, 나는 너한테 화난 게 아닌데. 꼭, 바둥거리는 몸을 껴안아. 쪽, 이번엔 걱정 그득할 네 머릿속, 이마에 입을 맞춰. 그리고 눈물 머금은 눈가에도, 눈물길 만드는 못된 볼에도, 당장이라도 싫은 소리 낼 것 같은 입에도, 울음 참겠답시고 깨무는 입술에 다시 한번. 

  나한테 눌린 네가 숨을 안 쉴 것만 같아 잠깐 몸을 떼었더니, 정신 못차린 넌 다시 울먹이기 시작해. "마도카, 마도카." 어린아이야?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어. "그래, 그래. 우리 호무라 쨩." 어린아이라면 달래줘야지. "뭐 해줄까." 네 귓가에 아주 작게, 작게 속삭여. 시계소리에 묻힐세라 바짝 달라붙어서. 입술 달싹이는 소리까지 들리게끔. 뭐.해.줄.까. 너는 키스해달라고, 큰소리로 말해. 내 개미 목소리만한 물음과, 네 우렁찬 답.

  고른 네 치열을 훑어주며, 달래줘야지, 원하는만큼. 너는 언젠가 내가 가르친대로 눈을 꽉 감고 키스를 주고받아. 착하다, 착해. 그냥 마루에 있는 네 머리를 들어 내 손바닥에 닿게해. 뒤통수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면, 그게 너 아닐까. 

  너는 숨에 버거워하면서도 내 키스에 따라와. 혀를 빼주면 "하아, 하아."거리며 죽다 살아난 것처럼, 물 젖은 눈으로 날 보는 너. 더 겁탈하고픈 마음이 들지만 네가 괴로워할까, 가벼운 입맞춤으로 끝을 맺어.

  "여행 계획 짜야지. 그치? 호무라 짱." 일으켜세우자, 너는 버티며 불만스레 나를 봐. "으음?" 내가 갸웃거리자, 너는 상체만 일어선 나를 확 끌어당겨 자기 품 속으로. "우왓!"하고 나도 모르게 꼴불견스런 소리를 내. 너는 상관없다는 듯, 나를 꾹꾹 안아들지. 그리고 툴툴대며, 작게, 아주 작게. "끝까지 해달란 말야."

    나는 네 그런 점이 귀여워서, 너무나도 버틸 수 없게, 못될 정도로 귀여워서 나는 너가 원하는대로 해주기로 해. 

  여행계획 세우기엔 글러버린, 어느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