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하나 풍(비주얼노벨)으로 써본 창작.

오리지널캐, 드림캐가 나옵니다. 그리고 치아키쨩이 나쁜 애 됐음.







이제 잘 모르는 아이가 나를 "나다"라고 부르는 것에는 익숙해졌다.

초등학생 이후로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린 적이 있던가?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울림을 다시금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 "나다, 맞지?"


그때는 몸을 떨 정도로 놀랐다.

혹여나 나를 아는 사람인줄만 알고.


??? "난 아이하라 링고야!"

나다 "그래…… 아이하라 씨라고?"


그러나 처음 보는 얼굴. 이런 해맑은 아이가 내 주변에 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이 아이가 갑자기 나를 불렀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링고 "우리 이번에 짝이야. 알고 있어?"

나다 "아……."


아이하라 씨는 내게 벽보를 확인해보았냐는 듯이 잠깐 그쪽으로 뒤돌아보았다.

난 아직 게시판을 보지 않아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링고 "한 해 동안 잘 부탁해! 나다쨩!"


아이하라 씨는 내 손을 꼬옥 쥐며 말했다.

그때 묘한 충족감이 손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



나다 "아이하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나루미 "그래, 링고. 좀 더 힘을 바짝 줘서 당겨야지."


아이하라는 낑낑거리며 시트를 씌웠지만 결국 주름이 남고 말았다.

나와 히카와가 동시에 달려들자, 아이하라가 울상으로 옆 침대로 몸을 돌렸다.


링고 "으앙! 두 사람 다 나만 괴롭히고! 유우노쨩 살려줘~"

사츠키 "안 되지, 링고쨩. 유우노는 내가 지도 중이니까 빼앗지 말아줘."

사츠키 "유우노는 힘을 너무 줬어. 조금 더 느슨하게."

유우노 "사, 사츠키 씨?!"


이시가미가 한 손으로 가타쿠라의 허리를 휘감으며 밀착했다.

가타쿠라는 당황한듯 얼굴이 새빨개져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시트를 정돈했다.

무슨 조화인지 가타쿠라의 손을 거친 시트가 이번에는 완벽하게 교환되었다.


사츠키 "역시 마음 먹으면 잘하는 아이구나. 나의 유우노는."

나루미 "아, 또 저 둘 자신들만의 세계로 들어갔다……."


히카와의 말이 맞는 게 저렇게 되면 저 둘은 뭔 짓을 해도 보질 못한다.


아키라 "바보 커플 놈들."


여태껏 말 없이 가만 서 있던 이나토리가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히카와는 그걸 보곤 비죽 웃었다. 아주 장난스럽게.


나루미 "흐응~? 우리 아키라쨩 외롭구나?"

아키라 "아니거든. ……꺅!"


히카와는 빠른 스탭으로 이나토리 뒤로 가서 한 팔로 허리를, 나머지 팔로는 가슴께를 감싸안았다.


아키라 "뭐하는 짓이야!"

나루미 "아하하, 좋으면서."


이나토리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무심결에 아이하라의 허리를 보았다.

이나토리만큼 얇진 않지만, 가타쿠라보단 조금 작은 느낌이 드는 어린애 같은 허리였다.

각자 자신의 연인에게 안기거나, 연인의 허리를 휘감고 있어서일까.

나는 순간 아이하라를 끌어안을 뻔한 왼팔을 오른손으로 지긋이 눌렀다.


링고 "아, 정말! 다들 그만 놀구!"


아이하라는 빨개진 얼굴로 자꾸만 성을 냈다.

먹을 즈음의 사과처럼 물들어 부푼 볼에 자꾸만 눈이 갔다.



>



아이하라가 우울하디는 얘기는 들었다.

……얘기를 들었달까. 사실 옆에 있으면 다 알 수 있는 거지만.

아무래도 문제는 동거하는 사촌과의 관계인 듯했다.

요컨대, 아이하라는 좋아하는 것이다. 그 사촌을.

우연히 이나토리가 아이하라한테 조언하는 걸 들었다.


아키라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얼른 관계 회복해. 관계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낫기 힘드니까."

링고 "으응…… 고마워."


커다란 식당 문 뒤에 숨어, 한참을 서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일단 아이하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치아키쨩, 이라고 아이하라는 늘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사촌이지만 성은 다르다. 외가쪽 친척이니까.

타카오 치아키 씨. 미카간을 졸업한 간호사로서, 나의 선배인 사람.

그리고 아이하라의 사촌인 사람.


나다 "……"

링고 "나 꼭 가서 사과할게!"


아이하라가 내가 숨어있는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뒤도 안 돌아보고 쭉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꼭 무슨 그림 같았다.


아키라 "어라, 너……."


아이하라에 이어 천천히 걸어나온 이나토리는 날 알아챘다.


아키라 "설마…… 엿듣고 있었어?"

나다 "고의는 아니었어."

아키라 "흐음."


'과연 그럴까.'라고 이나토리가 작게 말했다.

그 말에 한소리할까 하다가, 그럴 맘이 들지 않아 말았다.


아키라 "아이하라 씨가 잘 될 거라 생각해?"

나다 "아이하라라면 잘 되겠지."

아키라 "……왜?"


이나토리는 의문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나다 "쟨 밝고 올곧잖아. 저런 앨 누가 싫어하겠어."

아키라 "하지만……."


이나토리가 전에 없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키라 "사촌이면 근친에, 동성애잖아? 그리고……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타카오 씨는…… '제대로 된'…… 사람 같고."


이나토리의 눈을 쳐다보자, 그녀는 눈을 돌렸다.

'제대로 된'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다 "네가 그런 말할 깜냥이 된다고 생각해?"

아키라 "현실적으로 봤을 뿐이야."


이나토리는 계속 눈을 피한채 말했다.


아키라 "그리고…… 나 봤어."

아키라 "타카오 씨가 남자랑 있는 거."



>



아이하라가 이틀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열이 심하다고, 임시 교사로 왔던 타카오 씨가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모두들 걱정했다. 특히 미카녀 시절부터 트리오였던 가타쿠라와 히카와가.

당장이라도 병문안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타카오 씨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치아키 "열이 심하지만 괜찮아, 단순한 감기니까. 병원에서 약도 타왔고. 그리고……"

치아키 "열이 심할 땐 혼자 쉬는 게 제일이니까."


타카오 씨는 웃었지만, 눈은 무언가 슬퍼보였다.

다들 그녀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이 수긍하고는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링고가 나으면 뭘 해줄까, 이런 말을 하면서.

수업 끝난 강의실엔 우리만 남아있었으므로 링고 얘기만 들렸다.

나는 강의실을 나서기 직전,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아주 슬프기만 한 얼굴의 타카오 씨가 있었다.



>



영 타카오 씨의 태도가 신경쓰여서 가타쿠라한테 물어 아이하라네 주소를 알았다.

히카와가 알게 되면 같이 가자고 할 것 같아, 일부러 가타쿠라에게만 물었다.

가타쿠라도 분명 함께하고픈 눈치였지만 나는 적당히 애둘러 말했다.


나다 "히카와랑 네가 가면 아이하라가 괜히 무리할지도 몰라. 덜 친한 내가 후딱 프린트만 주고 올게."


가타쿠라는 이 말에 수긍한 듯 했다.

그래, 아이하라는 그런 아이니까.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유우노 "……나다 양은 똑부러지시니까요."

유우노 "꼭 나중에 링고쨩의 상태 알려주시기예요."


유우노가 단단히 일렀다.

내가 똑부러진다니, 무슨 뜻일까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빌라촌의 어느 빌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빌라.

하지만 알고 있다. 여기에 아이하라가 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 빌라가 굉장히 큰 성처럼 보였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성역처럼 느껴졌다.


나다 "바보 같긴."


작게 중얼거리고 들어섰다.

계단을 올라가서, 뚜벅뚜벅 복도를 걸었다.


나다 "응?"


아이하라와 타카오 씨의 집이 있을 쪽으로 코너를 꺾어 들어가자, 복도 중앙에 누군가가 웅크려 앉아있었다.

설마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사실 설마가 아니었다.

이미 입은 소리치고 있었다.


나다 "아이하라!"


아이하라는 고개를 들었다.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어 손을 잡았다. 손이 꽤 찼다.

봄이라곤 해도 복도에 계속 나와있으면 추울 날씨였다.

봄점퍼 사이로 얇은 파자마와 살짝 드러난 가슴이 보였다.


나다 "……!"


나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이하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나를 보곤 눈물을 글썽였다.


링고 "나다쨩……"

나다 "어떻게 된 거야?"


아이하라는 갑자기 나를 확 껴안았다.


링고 "치아키쨩의 향기가……"

링고 "너무 강해서…… 못 있겠어."


아이하라는 열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했다.

근데 나도 막 열이 오르는 모양이다.


나다 "그럼 우리집에 와."



>



좁고 어두운 집이 부끄럽다.

짐 챙기려 슬적 들어간 아이하라네와는 차마 비교할 수도 없는 곳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꽤 돈이 되는 건가.

……아님 내가 그냥 고학생인 건가.


링고 "실례하겠습니다……"


이젠 조금 진정 되어서 말가진 눈으로 아이하라가 우리집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얘 미카녀 출신이랬지. 사촌인 타카오 씨 쪽도 부자인 걸지도.

아이하라와 얘기할 때 미카녀생인 걸 의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신경쓰인다.

귀한집 아가씨가 이런 데서 지낼 수 있을까?


나다 "대충 짐 놓고 있어."


침대는 아이하라에게 내주고, 나는 여름용 이불을 꺼내 바닥에서 자자.

그런 생각을 하며 장롱을 열었는데.


나다 "으악!"


문이 열리자마자 쌓인 이불이 와르륵 쓰러졌다.

이사 때 대충 처박은 게 이런 업보가 될 줄은.

어차피 꺼내려던 이불들이 바닥에 깔렸으니, 좋은 게 좋은 건가.

대충 이불을 펴 깔고 있으니, 아이하라가 쭈뼛쭈뼛 침실을 들여다보았다.


링고 "저기…… 나 와인 가져왔는데."

나다 "와인?"


링고가 가방속에서 수건으로 돌돌 만 와인병을 꺼냈다.

와인을 즐겨마시진 않지만, 묘하게 마트에서 팔 만한 보급품처럼 보이는 와인이었다.


나다 "웬?"

링고 "그…… 마실까 싶어서."


링고가 묘하게 슬픈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이 타카오 씨의 것과 겹쳐보였다.

나는 와인병을 빼앗았다.


링고 "아……"


좋아하는 인형을 뺏긴 아이 같았다.

나는 식탁에 있는 자질구레한 식기를 죄다 싱크대에 몰아넣고, 언젠가 샀던 와인잔 세트 중에 두 개를 꺼냈다.


나다 "여기 코르크 마개 따는 게 있었는데……"

링고 "어…… 나다쨩? 마실 거야?"

나다 "네가 마시자며."

링고 "……으응."


아이하라는 석연찮은듯 가만 앉아있었다.

나는 어떻게 병따개를 찾아 와인병을 열었다.

뽕하고 명쾌한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아이하라 앞으로 잔을 끌어다가 가득 따라줬다.


링고 "음……"


아이하라는 불안한 듯 내 눈치를 봤다.


나다 "안 마셔?"

링고 "어, 아니. 그게."

나다 "너 술 마셔본 적 없구나."


적중인 듯 했다.

아이하라는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더니, 살그머니 입을 열었다.


링고 "요리에만 써봤지 마셔본 적은 없어……"

나다 "그럼 이거 요리용 와인이야?"

링고 "아니, 치아키쨩이 마시는 거."


거기까지 말하고 아이하라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링고 "한심하다. 나 대학생인데 술도 마셔본 적 없고."


나는 아이하라 앞에 있는 술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애가 보는 앞에서 한잔 가득 와인을 원샷해버렸다.


링고 "……! 나다쨩?"

나다 "하으으으……."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났다.

사실 난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근데 왤까. 딱 봐도 장난 아닌 양을 원샷해버리다니.

내가 좋아하는 주량을 단번에 마셔버려, 머리까지 쭉 따스한 기운이 돌았다.


나다 "지금부터 마셔보면 되지."


아이하라는 그제서야 히히하고 웃었다.


링고 "응! 그러게!"


그리고 내가 싹 비운 잔을 들어 내밀었다.


링고 "한 잔 부탁드립니다!"

나다 "다른 잔도 있는데 왜 굳이 그걸로……"

링고 "그치만 나다쨩이 날 위해 꺼내준 잔이잖아? 이걸로 마시고 싶어."


뭔가 낯부끄러워져서 더 말하지 않고 두모금 정도 되는 와인을 따라주었다.


나다 "한 잔 하시지요."

링고 "그, 그럼 잘 받겠습니다."


아이하라는 바짝 간장해서 두 손으로 잔을 받아들고 쭉 들이켰다.

꼴깍하고 맑은 와인이 눈앞에 목덜미를 따라 내려가는 게 보였다.

누군가의 첫 술자리를 보는 건 처음이 아닌데.

친구들이 처음으로 술잔 부딪히는 걸 꽤 많이도 봤는데.

아이하라의 첫 술은 어찌도 이렇게 맑아보일까.


링고 "……맛있어."

링고 "신기하다! 맛있어!"


링고는 웃으면서 남은 한 모금도 마셔버렸다.


나다 "맛있어?"

링고 "응!"

나다 "다행이네."


와인 자국만 남은 잔을 내미는 아이하라.

잔이 계속 늘어가자 첫 잔의 신비함도 없어졌다.

내 눈앞에는 처음을 맛보는 아이가 아니라, 알콜에 취해 헬렐레거리는 사람만 있었다.

그래, 너무나 매력적으로 취한 사람이.


링고 "에헤헤. 좋아."


나는 탁자 위로 엎드리고 아이하라의 한 손을 깍지꼈다.

그 상태로 한동안을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하라는 몽롱하게 취한 눈길로 날 내려다 보며 말했다.


링고 "뭐야아?"


히죽히죽 웃는 그 얼굴이 날 유혹하는 것 같아서.

나는 상체를 들어, 깍지낀 손을 잡아당겼다.


링고 "앗!"


가까워진 아이하라의 얼굴. 그리고 입술.

나는 가볍게 그 입술에, 나의 입술을 맞췄다.

나는 인정해야했다. 이 바보 같은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단 사실을.


나다 "한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두근두근한 가슴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



아이하라는 도망가지 않고 우리집에서 지냈다.

술 취해 잠들어, 아이하라가 약간의 숙취로 하루종일 고생하고.

그 사건을 더 말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는 무언의 선을 그었다.

아이하라가 먼저 들어간 목욕물이 기분좋을 정도로 식어있는 나날.

내가 생각보다 익힌 채소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 나날.

아이들의 아이하라와 내 도시락이 같은 걸 보고 묘한 의심을 했을 때, 아이하라는.


링고 "놀리지 마! 정말!"


나는 벌개진 얼굴을 숨기기 바빴는데, 그 앤 꼭 신발끈 못 묶는 걸 놀림 받는 아이 정도로 행동했다.

그쯤 되면 마음을 놔야하는데. 이 두근거림이 느슨해져야하는데.

반대로 고동이 뜀박질해갔다.



>



말도 안 될 정도로 시간 감각 없는 나날이 지나고.

긴팔을 옷장에 넣을 심정으로 개고 있을 때, 아이하라가 말했다.


링고 "너무 오래 신세졌으니까. 나도 이제 가봐야지."

나다 "……"


맞는 말인데. 보내줘야하는데.

나는 어느샌가 일어서 아이하라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다 "아이하라……"

나다 "아직도 타카오 씨가 좋아?"


내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링고 "……"


아이하라는 내 눈을 피했다.


나다 "아이하라."


나는 아이하라가 고개를 돌린 쪽으로 몸을 옮겼다. 어떡해서든 시선을 맞추려고.

아이하라의 눈에는 내 목소리 만큼이나 물방울이 그득했다.


나다 "왜 울어?"

링고 "안 울었어."


고개를 붕붕 흔들며,


링고 "안 울었다구. 울지 않았어."


그러나 그 말을 뱉고 아이하라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링고 "이제 몰라. 아무것도 모르겠어."


나는 우는 아이하라를 쓰다듬었다.

아이하라는 쭉 몸을 뒤로 내뺐다.


링고 "하지 마."


아이하라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링고 "치아키 쨩 같잖아."


그 날카로움은 금세 무너져서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링고 "나다 쨩,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이하라의 손을 더욱 꼬옥 쥐었다.

아이하라는 고개를 들었다.


링고 "나 치아키 쨩 좋아해."

나다 "알아."

링고 "가족으로서 말고, 정말…… 연인이 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링고 "그렇지만 치아키 쨩, 남자친구 있었어."


남자친구라는 단어는 또 얼마나 오랜만인지.


링고 "몰랐어. 한번도 그런 얘기 안 했거든."

링고 "남자친구는 의사래. 사내 연애고, 집안에도 아직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라. 알리면…… 바로 결혼이니까."

링고 "결혼하면 치아키 쨩, 일 관둘 거래."


링고 "난 치아키 쨩을 보고, ……치아키쨩에게 간호를 받고 나도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이 학교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어."

링고 "치아키 쨩이 졸업한 이 학교에서 공부해서, 옆에 나란이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링고 "그렇지만……"

링고 "치아키 쨩이 더 이상 '타카오 치아키'가 아니게 되면 어떡해? 

링고 "치아키 쨩이 간호사가 아니면 난 어떡해?"

나다 "……"


나야 모를 일이다.

타카오 씨가 간호사를 관둬도, 아이하라는 학교를 관둘 수 없다. 아이하라는 어린애도 아닐 뿐더러, 그럴 입장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하라는 학교를 졸업하고, 아마 간호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올라타버린 레일. 아이하라는 여기서 뛰어내릴 정도로 용감한 사람일까?

내가 아는 아이하라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하지만.


나다 "아이하라, 나는."


이 아이가 지금 당장 비눗방울처럼 터져 사라질 것 같아서.


나다 "난, 아이하라 네가 이 학교를 졸업했으면 좋겠어."

나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


붙잡아두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만 한다.


나다 "아이하라가 간호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링고 "어째서? 겨우 이런 마음으로 간호사가 되려는 건데."

나다 "그게 뭐가 나빠. 나도……."


아이하라가 나를 빤히 보았다.

그 눈에 홀린 듯 진심을 천천히 말했다.


나다 "……나도 너 때문에 학교 계속 다니는데."

링고 "에."


내가 말한 말에 내가 놀라버려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려버렸다.


링고 "나다쨩?"

나다 "……미안. 나 잠깐만 더 이러고 있을게."

링고 "저, 저기……."

링고 "나 조금 더 여기 있어도…… 될까?"


내가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인 것만으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링고 "한동안 더 잘 부탁해. 나다쨩!"


그 웃음소리가 참 좋아서.

새삼 왜 내가 이 아일 좋아하는지 깨달을 것 같아서.

나는 또 붉은 얼굴만 마구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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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성하는 테사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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