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밴드(반창고)
"가만히 있어. 아, 아프겠다."
나는 가만 앉아 있는다. 별 대단한 상처는 아닌데……. 마도카는 호들갑 치며 빨갛게 까인 무릎을 들게 한다. 흙은 이미 물에 씻겨내려가 말간 피만 주륵 흐른다. 살구빛 살갗 속으로 파여 들어간 연분홍 살이, 아기보다 더 여린 속살이 마도카의 머리색과 닮았다 생각하며 나는 가만 앉아 있는다.
보건실 침대에 앉아, 오른 다리만 걸친 나. 반팔, 반바지의 빨간 체육복. 펄럭이는 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햇살, 여름 열기, 아이들의 구령소리. 덥지만 이상하게 청량한 보건실.
마도카는 톡톡 응고제를 뿌렸다. 회갈색 그것은 마치 돌을 간 것 같다. 나는 진짜 돌가루가 상처에 들어간 것 처럼 찡그린다. 보건위원이라던 그녀는 구급상자 속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앞서 수차례, 필시 축구로 다친 사내아이들에게 몸살 앓았을 연고를 꺼낸다. 나보다는 약이 더 환자같은데. 쓴웃음이 나온다. 마도카는 연고를 쥐어짜고, 돌려 말아보고 별 수를 쓰지만 이미 말라 비틀어진 연고는 약을 내어주지 않는다.
지금은 4교시 체육시간의 중반. 보건 선생님은 급식실로 식사하러 가신 시간. 마도카는 고민스레 내 상처와 연고를 번갈아본다. 나는 됐다고 해도 이상한 데서 고집스러운 그녀, 여자 몸에 상처 남으면 안된다며 내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여성성이 판단나면 나는 옛날에 여자가 아니었을텐데. 쓴웃음이 나온다. 성별을 그리 쉽게 바꿀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바꾸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보며, 가만가만 생각한다.
마도카는 결국엔 그냥 밴드를 찾아내 꾹꾹 눌러붙인다. 밴드 사이로 피가 배여나올 정도로. 아팟, 하고 투정 부리니 한번 쓱 손바닥으로 지긋이 매만져준다.
"다치면 엄마가 이렇게 해줬어. 또 다치면 이렇게 아프니까, 다신 다치지 말라구."
너희 어머니 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그녀도 빙글 웃었다.
2 밴드(band)
드럼의 진동. 그건 더이상 소리가 아니라 무식하게 공기를 때리는 울림이다. 스틱으로 공공 두드리는 북도, 발로 쿵쿵 밟아대는 베이스 드럼도, 둔탁음을 챙챙 삼켜버리는 심벌 소리도. 심장은 이제 제 깔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드럼의 울림에 따라 움직인다. 아무리 보컬이 시원스러워도, 기타, 베이스 연주가 멋있어도 내 눈길은 뒷쪽에 드럼에 향한다.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둑한 구석에서 육중한 악기를 온몸으로 연주하는 누군가의 모습은 분명 멋있다. 그 커다란 것을 제 몸처럼 다루는 것이 멋있는 것이다.
"보컬 멋있었지~ 나도 기타 배우고 싶어."
아마 기타리스트가 보컬까지 겸했었나보다. 줄곧 무대 뒷켠만 보고 있던 나는 네 질문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네가 실망할까, 응 멋있었어. 기타 배우고 싶어? 하고 조금 오늘 공연과는 다른 방향으로 말을 잇는다.
너는 기타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흥분해서 그 나이 때 답게 '음악인'에 대한 환상을 늘여 놓는 것이 퍽 귀엽게 느껴진다. 카미죠 군 같이 클래식 하는 사람도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노래하면 밴드 아니겠냐며 얘기하는 게 너답지 않게 반응이 폭발적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나는 응응 하고 받아준다. 집에 가면 좀 알아봐야지 하면서.
물론 그때만 바짝 관심 있던 넌 며칠 후에는 기타의 'ㄱ'도 잊은 듯, 심드렁했다. 네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나이 때가, 뭐든 관심 갖게 하면서도 금세 질리게 하는 그 나이 때가 나쁜 것이다. 꽤 열심히 기타에 대한 화제 준비를 해왔던 것도 물거품이 됐다. 그게 그닥 섭섭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뭐, 그렇지 하고.
다만 그날 본 드럼에 대한 벅찬 감정은 묘하게도 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놀라고. 악몽 같으나, 또다른. 처음 무기를 쥐었을 때와 같았다. 탕보단 팡하는 그 총의 파열음. 벌벌 떠는 손으로 던졌던 폭탄. 차가우니 묵직한 철제, 내가 뭔가를 파괴할 수 있다는 실체감. 철제라는 놈은 아주 차갑거나 아주 뜨겁거나 둘 중 하나라, 어설픈 게 없었다. 죽이면 죽였고, 침묵하면 영원히 입다물었다. 믿음직한 놈인 것이다. 그 신뢰를 나는 드럼에서 보았다.
네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얘기 했던 그날, 나는 아마 뒤에서 쿵쿵이는 드럼이 하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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