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빈둥




  "미키 사야카, 언제까지 빈둥샐 참이야." 

  고타츠에서 손을 영 빼지 않고 있으니, 보다 못한 호무라가 잔소리를 했다. 그치만 손 추운걸, 하고 대꾸 할까 하다가 그냥 눈을 확 감아버렸다. 입에 문 샤프를 까닥까닥 움직여 절대 하기 싫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하아, 하는 호무라의 한숨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고타츠를 나서는 기색이 나서야 나는 실눈을 떴다. 일단 차라도 내올테니 기다리는 호무라의 말.

  호무라와 내가 단둘이서만 고타츠에 들어가 있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말고사도 끝난, 겨울방학 사이에 원래라면 여유로울 한 때. 쏟아지는 쪽지시험에 감당하지 못한 나는 파산하듯 재시험을 보기로 결정된 것이다. 과목도 다양. 영어, 수학, 세계사, 음악. 당장 이틀 후에 볼 시험만 해도 3개였다. 겹치고 겹친 시험들에 나는 질려서, 차라리 전부 낙제 받고 방학동안 보충 받는 게 낫지 않을까라며 맘편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내 사정을 안 마도카가 좋은 가정교사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한 것이 화근.

  '설마 가정교사라는 게 호무라였을 줄은.'

  반강제로 호무라 집에 끌려온 나는 날도 좋은 주말에도 특강을 받게 된 것이다. 

  샤프 끝을 입으로 물고 까닥까닥. 시원해서 물고 있기에 딱 좋았던 금속이 내 입 온도에 맞춰 따뜻해진다. 나는 고타츠에서 손을 빼 샤프 끝을 매만졌다. 따뜻하네. 뜨겁진 않아도 따스한 온기에 맞춰진 금속이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호무라가 간단한 다식과 녹차를 내왔다. 오오, 꽤 제대로 된 와풍이다. 다식에 손을 데려는 순간 호무라가 접시 채로 빼앗어든다.

  "먹으려고 가져온 거 잖아."

  "거기 문제 다 풀 때까진 국물도 없어."

  와, 엄하다. 생각보다 딱딱한 호무라에 태세에 일단 꼬리를 말았다. 분탕치는 새에 손과 샤프 끝은 다시 차가워진다. 방안이 조용해질 때 쯤, 질리지도 않는 장난끼가 인다.

  "저기~ 호무라."

  호무라도 좀 지루했던 지, 내 장난스러운 말투에도 고개를 힐긋 돌려 나름 호의적으로 응해준다.

  "너 왜 내 특강 해주는건데. 자자, 솔직히 말해봐. 너 마도카 좋아하지? 이 사야카 님이 도와줄 수도 있다구~?"

  그러자 호무라는 플라스틱 책자로 내 머리를 탁 내리치더니,

  "그런 말로 시간 잡아먹을 생각 말고. 네 점수가 안 오르면 나도 마도카한테 면목 없으니까."

  아프잖아! 아야, 오버를 떨어도 호무라는 보는 척도 안 한다. 오히려 다음 문제는 역사니까 빨리 풀어. 10분 안에 이 장 다 풀 수 있지? 라면서 스톱워치까지 빼드는 게 아닌가. 장난을 안 받아주는 게 불만족스러워, 입을 삐쭉 내밀고 토라져 있으니 호무라가 조심스레 묻는다.

  "마도카도 그 사실 알아?"

  "응, 무슨?"

  한창 유가사상이 전개된 국가가 한인지, 진인지 여념하고 있었던 지라, 나는 눈치 없이 되묻는다. 나와 눈이 맞은 호무라는 새빨갛게 뺨을 물들였다. 아, 아냐. 호무라는 뒤늦게하고 변명한다. 그제야 깨달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까지 서로한테 둔하다니. 아아, 진짜.

  "바보가 한 둘이 아니구만……."

  답답해져서 차게 식은 샤프 끝을 입에 물고 다시 까닥까닥였다. 이게 따뜻해지기 전까진 나도, 호무라도 뭔가를 하지 못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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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성하는 테사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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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



  추워, 라고 되지도 않을 어리광 부리며 네 팔짱을 꼈다. 거짓말은 아니다. 깔끔하게 싹 언 빙판길을 조심조심 움찔거리며 걷다보면 못 느낄 추위도 느낀다. 몸을 한껏 움츠리고 걷다보면 새삼 날이 참 춥네 싶어지는 거다. 연말이라는 것도 한몫한다. 12월에 들어서면 괜히 쓸쓸한 기분이 드니까. 

  아, 추워. 진짜 이걸 날이라고. 이정도면 휴교 내려야하는 거 아냐? 궁시렁, 궁시렁 얘기하고 있자니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평소같으면 아, 진짜. 듣고 있으니까 더 추워졌잖아. 어쩔 셈이야! 라고 태클 걸 네가 조용하다. 곰곰히 뭔가 고민하는 태가 퍽 진지하기까지 하다. 쿄코? 너를 부르며 빤히 얼굴을 바라보자, 너는 크게 결심했다는 투로 말했다. 

  "사야카, 그럼 우리집 갈래?"

  어? 한마디 내뱉을 세도 없이 나는 팔짱낀 내 팔을 잡아 이끄는 너에게 끌려간다. 너무 큰 수확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다. 

  나를 끄는 동안, 너는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옆에서만 봐도 새빨갛게 된 게 티날정도다. 정면에서 마주보면 얼굴에서 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괜히 얼굴 빨개졌다구. 쿄코 쨩~ 이라며 놀려대면 초대를 무를지도 몰랐다. 이 추운 날, 혼자 버려지는 건 싫으니까 얌전히 쿄코의 팔짱을 꼬옥 꼈다.

  "더, 더우니까 붙지마."

  "뭔소리야. 이 추운 날에. 너 입김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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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성하는 테사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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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스한 손을 잡고




  너의 하루는 충실한 사역마들에게서 보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잠을 탐하는 비몽사몽한 몸을 겨우 일으키며 아침햇살에 눈을 찡그리는 너는 영락없는 그 나이 때 소녀다. 그러나 알람시계 대신 네 귓가에서 어김없이 종알거리는 도마뱀의 존재는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각시킨다. 매 아침 너는 너 자신을 잊을 달콤한 여운도 갖지 못한다. 도마뱀의 목소리는 깨진 것처럼 작고 기괴해서 너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귓가 바짝 도마뱀을 키우는 악마인 너 외에는. 널 닮아 눈이 예쁜 그 새카만 도마뱀은 속닥속닥, 정보를 전달한다. 모모에 나기사……. 몽롱하게 말을 전해 듣던 너는 번뜩 눈이 뜨여 되묻는다.

  "누구? 잠깐, 다시 한번만."

  도마뱀은 다시 그 기괴한 목소리로 모모에 나기사…… 라고 전달한다. 너는 불길한 예감에 자리를 뜬다. 아, 뭔가 일어났구나.


=


  "쿨럭. 케엑……. 쿨럭, 쿨럭."

  그저 길을 걷고 있던 나기사는 갑자기 무언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조그마한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검은 것. 급히 나기사를 쫓아온 너는 뜨악했다. 마법소녀가 아니라고 너무 부주의하게 방심하고 있던 탓이다. 

  나기사는 살짝 뜬 눈 사이로 너를 봤다. 그 눈이 영문을 몰라 떠는 마냥 어린 소녀의 것이다.떨리는 눈동자가 너를 향해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너는 그 검은 것을 알고 있었다. 뱀처럼 길지만 모나지 않아 둥글고 폭신한 것. 

  나기사는 괴로워하며 제 목을 스스로 조르다가 마침내는 뒤로 넘어가 하염없이 그 괴로운 것을 토하려한다. 어린 소녀의 작은 목을 통과하지 못하는 그것은 쉽사리 나오지 못한다. 나기사는 실신해 신내림 받는 것처럼 등을 털럭털럭 내든다. 아픔에 굳게 감은 눈에서, 겨우 숨이 통하는 코에서, 괴로운 긴장감에 열린 땀구멍에서 쉴새없이 체액이 흘러나온다. 

  너는 나기사의 손을 꼭 쥔다. 네가 미간을 찌푸릴수록 나기사는 안정되어간다. 나기사 목구멍에 걸려있던 검은 것은 점차 다시 나기사는 결코 모를 안 쪽으로 스며들어간다. 이윽고 너는 괴로움에 어질해하건만 나기사는 새근새근 잠들었다. 길거리에 두 여자애가 그 난리를 쳤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 간다. 언제부터였는지 네 귓가에 도마뱀 꼬리가 빛나고 있었다.

  나기사의 손을 쥔 네 손이 식은땀 투성이다. 너는 그 손을 놓으려하지만 어린 소녀애는 쉽사리 놔주지 않는다. 난처해서 어떡해서든 그 고사리같은 손을 피려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손은 점점 억세게 쥐어졌다. 결국 피는 것을 포기한 네가 털석 주저 앉는다. 

  너의 손이 찬 것인지, 나기사의 손이 따스한 것인지. 너는 나기사의 손의 체온을 저도 모르게 즐긴다. 오랜만에 닿는 36.5도라는 사람의 온도. 따뜻한 물과는 비견할 수 없는 그 실체있는 따스함에 너는 취한다.

  "나기사는 호무라를……."

  잠꼬대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나기사 본인도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모를 테다. 그런데 너는 그 손을 빼고 도망치려한다. 마치 사형 직전의 죄수가 쇠사슬을 끊고 달아나려는 태같다. 너는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게 거칠게 그 손에서 내뺀다.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놀란 나기사가 놀라 깬다. 

  "호무라…… 언니?"

  고통에서 막 깬 나기사가 의문투로 네 이름을 부른다. 거기에는 왜 자신이 여기에 쓰러져 있는지, 왜 이리 목이 아픈지, 왜 호무라 언니가 여기에 있는지, 여러가지 뜻일테다. 너는 계속 안절부절 못하고 나기사의 손만 본다. 나기사의 눈은 보지 못하고, 계속 그 마주잡아 얽혀있는 스무손가락만 본다. 

  나기사는 어리둥절하지만 가물가물하게 네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만큼은 알았다. 그래서 아직 소녀애는 목이 아팠지만 빙글 웃으며,

  "고마워요. 호무라 언니."  

  너는 화악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한다. 완벽하게 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했다는 죄책감, 어쩌다보니 말려들게 했다는 배덕감, 너 자신은 그런 착한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생각들. 너의 속도 모르는 나기사는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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