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감기는 아니었다. 목은 아프지도 않았고, 열이 들끓을 뿐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으례 몸만 후끈하곤 했으니 이번엔 심하지 않았다. 감기약으로 몽롱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러다보면 악상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 사요가 부탁한 일이었다. 평소보다도 더 멋진 곡을 찾고 싶었다. 천재들처럼 하얀 천장 위로 교향곡을 쓰진 못해도 이미지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이미지는 논리가 아니라 결이야. 악보 위 음색들이 수학의 공식이라면, 곡의 이미지는 공식을 써내려가는 글씨체에 가깝다.
급한 발소리로 들어온 노크도 없는 방문은 귀에 익은 목소리부터였다.
"미나토 씨!"
"무슨 일이지?"
부스스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열로 흐릿해진 시야로 놀란 듯한 사요의 모습이 보였다.
"어쩌다 감기에?"
"작곡을 하다보면 답답해서 창문을 열어두고 생각하다가……."
"그럼 제 탓이니까 간호할게요."
그 순진한 얼굴이 괜히 심술이 부리고 싶어져서.
"그럼 키스해줘."
"네?"
"곡을 쓰다보니까 궁금해졌어."
"장난치지 마세요."
"안 할 거면 됐어."
예상대로인 사요의 반응에 도리어 내가 심통이 났다. 해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조금 더 당황해해도 괜찮잖아. 우리 둘밖에 없고. 재미없어져서 다시 누우려 몸을 돌렸을 때.
"알았어요."
사요가 성큼 다가와 내 목을 자기 양팔로 감싸안았다. 지근거리에서 사요에게 붙잡힌 형세가 된 나는 꼼짝 못했다. 사요는 살그머니 입술을 가져다대더니, 몇 번의 키스가 이어졌다. 따뜻했다. 그러나 비집고 들어온 혀가 굉장히 뜨거웠다. 놀랐지만, 사요가 팔을 풀어주지 않아서 떨어질 수도 없었다. 미끌거리고, 상대가 사요가 아니라면 기분 나빴을 감촉. 못 견디겠다 싶을 즈음에 사요가 떨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누르며 물었다.
"이, 이게 무슨 짓……."
"당신은 보컬이잖아요. 감기로 목이 상하는 건 절대 용납 못합니다."
꼭 방금 일로 감기가 옮은 듯 열띤 목소리로.
"제가 당신의 감기는 전부 받아가버릴 테니까."
"사요! 애초에 이건 목감기가...."
서둘러 말하려고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요의 얼굴이 고양이한테 손등을 할퀸, 어린 날의 나 같았기 때문에. 그 엉망이 된 뺨을 살그머니 쓰다듬었다. 내 손등은 아주 말짱했다.
"괜찮아. 금방 나을 테니까."
"……."
"사요가 걱정할 만한 일 안 만들 테니까."
"어느 아티스트는 목이 상할까봐 여름엔 에어콘 바람도 안 쐰다고 들었어요."
"나 보고도 그러라는 거야?"
"미나토 씨도 로젤리아에 모든 것을 걸 각오로 하셔야죠."
맨날 내가 하던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사요에게 들으니 이상했다. 왠지 우스워서 키득키득 웃었다.
"직접적으론 안 쐬도록 해볼게."
"……모쪼록 계속 노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주세요."
"사요도 계속 나를 따라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
"네, 물론이죠."
미나토 씨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주 잘못 들은 거겠지. 이 아이가 그런 말을 맨정신에 내 앞에서 내뱉을 리가 없으니까. 아주 지독한 열병이라도 난 게 아니라면.
"미나토 씨, 평생 저와 노래해주세요."
"그래, 평생."
이 감기가 낫고 얼른 너와 음을 맞춰보고 싶어. 연습이든, 라이브든. 만족스럽든, 별로든. 이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열이 무척 심했다. 내일이면, 다시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