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witter.com/tesachu/status/1004223332974071808
트위터에서 즉흥적으로 풀었던 썰을 읽기 좋게 정리하였습니다.
"저는 가벼운 것이 장점입니다. 지휘관."
내가 본 것 중 가장 무거운 눈으로 너는 그렇게 말했다.
당시 내 부관은 MP40이었고, 그녀의
"지휘관 님"
이라는 말에도 물려가고 있었으므로.
"오늘부터 너는 이곳의 부관이야"
그 가벼움에 한번 기대어보기로 했다.
여태껏 작성해둔 모든 작전보고서를 pps43에 넘겨주었다.
pps43은 'MP40 따위'한테 인수인계 받는 게 불쾌해보였지만 군소리하진 않았다.
유능한 아이였다.
MP40은 내 결정에 별 거부감도 없이 1년 7개월간의 부관 생활을 정리했다.
사실 부관이란 자잘하게 잡무나 하는 자리니까 싫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별탈 없이 부관의 인수인계가 끝나고 pps43은 물었다.
"이 부대에는 ppsh-41 언니는 없어?"
네가 선배에게 붙인 '언니'라는 호칭에서
5g짜리 추가 툭 하고 떨어지는 흔들림이 느껴졌다.
ppsh-43은 내 이전에 선임이 지휘했던 전투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날 보내 줘. 지휘관!"
네 눈에 힘이 팍 들어가 일그러졌다.
묘하게 나는 기분이 상해서
"그 힘을 다른 데 쓰면 좋을 텐데."
가시 선 내 말에 페페샤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입술을 꽉 깨물며.
……정말 분하구나, 그 작은 얼굴에 다 묻어날 정도로.
"구호에 실패하면 가만 안 둬."
이번 작전은 온전히 그녀의 '언니'를 위해서 짜여졌다.
실패할 리 없었다.
"ppsh-41 언니!!"
전장에 버려진 인형이 사지멀쩡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2년 가까이 방치된 인형이.
ppsh-41은 옷과 어깨만 망가졌을 뿐,
가벼운 자기 동생을 안아들기엔 충분했다.
pps43은 내일이 멸망이라도 되는 듯
언니 품속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난 두 페페샤가 생겼으니 이들을 어떻게 분리해 부를지 고민해야 했다.
말끔하게 수복된 ppsh41은
상냥하고,
잘 웃으며,
분명 훌륭한 전사였으나
겁이 많고
조금 무거웠다.
5g짜리 추처럼.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페페샤를 아낀다는.
어떤 페페샤일까. 소문은 거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보았던 널따란 밀밭.
어머니가 해주셨던 딸기쉐이크.
매일밤, 부관 숙소에서 두 페페샤가 숨죽여 잠을 청했다.
ppsh41이 간간히 내 방문 앞에 서있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 서있기만 하다가.
약간 결심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올렸다가,
다시 상기된 뺨을 가리고 제 동생에게 돌아가곤 했다.
5g 정도 되는 거슬림이었다.
ppsh41를 제6소대의 서브SMG로 배치시켰다.
사실상의 좌천이었고,
그녀는 별일이 없다면 창고에서 나오지 못할 터였다.
"사실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지만……."
ppsh41이 제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여긴 pps43이 있으니까요."
당장 pps43도 있는 마당에 그녀를 기용할 리 없었다.
ppsh41의 눈은
그녀답지 않게
뭔가 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니 꼭 가야 해?"
pps43이 울며 말했다.
"지휘관 님이 결정하신 거잖니.
이건 성스러운 임무인걸."
ppsh41이 내 얼굴을 보더니, 빙긋 웃었다.
일부러 첫 임무를 멀리 보냈다.
pps43이 자기도 가겠다고 말하면
나는 무어라 해야 할까.
그런데 pps43은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먼 원정 가는 언니의 등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부관 침소는 내 앞방이었다.
MP40이 부관이던 초기엔
밤늦게까지 일할 때도 많았기에 아예 옮겨버린 것이었다.
한 번도 페페샤를 밤에 부른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방을 배정한 이후론 들어가본 적도 없었다.
그 방에는 무슨 냄새가 날까.
선선한 가을 바람일까.
무슨 색일까.
선명한 분홍일까.
그리고 일주일 간은
페페샤의 충열된 눈을 보아야 했다.
그 분홍색 눈 주위가
짓무를 때까지 울었음을.
그런데도 넌 아무 말도 않는구나.
넌 전술인형이니까.
나는 널 지휘하는 인간이니까.
그 가벼움이 분명
눈물에 젖어 무거워지고 있었다.
"페페샤."
서류를 정리하던 페페샤가 고갤 들어 날 쳐다봤다.
"이제 페페샤는 나밖에 없었지."
그 말을 하며 잠깐 나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그래도 pps-43이 좋아. 지휘관."
라고 자그맣게 말했다.
ppsh41이 매일밤 동생을 부르던 것 같이
작은 목소리로.
"pps-43, 후에 네 방에 가도 될까?"
지휘실에서 일찍 나왔다.
오랜만에 내 방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작업을 했다.
pps43이 시간을 주고 싶었다.
거절할 시간을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pps43의 모든 것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녀가 내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존중하고 싶었다.
밤이 되어 소등시간을 한참 넘겼다.
똑똑똑
장갑 없이 노크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pps43?"
곧 문이 열리고
다 벗은 몸에 가디건 하나 걸친
pps43이 날 내려다보았다.
"누가 그런 걸 가르쳤어?"
나는 문밖에 기대어 물었다.
안에서 그녀가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전술인형한테 성기능이 존재해?"
"부관 메뉴얼에 있었어."
"변태 새끼들……."
읊조리며 생각했다.
나라고 얼마나 다른가, 하고.
MP40에서 pps-43으로
부관을 바꾼 이유에
쾌락적인 측면이 정말 없었나, 하고.
pps43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늘 보는 그 차림새.
방안엔 살짝 달콤한 냄새가 맴돌았다.
화약도 아니고, 흙먼지 냄새도 아닌.
계속 맡으면 사라질 것 같은.
가벼운 냄새였다.
pps43과 참으로 사적인 얘길 나눴다.
나의 고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곡창지대라
먹을 거리로 고민할 것 없었고
늘 밀이며 쌀이며
곡식들 익어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집안까지 쓸려들어오며
딸기와 바나나를
믹서기에 갈아마실 정도로
부유했다고.
내가 그리폰에 들어온 건
그런 소소한 삶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태어나 밀밭을 본 적 없고,
딸기쉐이크는 사진으로만 보았을
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화나지 않아?"
MP40은 이 질문에 부럽다고 했다.
나의 과거가,
'인간'의 삶이 부럽다고.
난 MP40에겐 그런 감정을 기대했다.
"화 안 나."
이번에 나는 네가 화내길 기대하며 말했다.
"지휘를 받아야 내가 있을 수 있어."
그녀가 주먹을 쥐었다.
"내가 지휘관의 지휘를 받으려면 적이 있어야 하고."
아주 반짝이는 눈으로 느릿하게 말했다.
"지휘관이 그 삶을 선택했더라면
나도 이 자리에 없었겠지."
느릿한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난 고맙다고 하겠어."
아, 역시
나도 이 방에 들어온 이유가
건전하지 않겠구나.
그 가벼운 몸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지는 꼴이 보고 싶어.
거꾸로 들어서
전부 쏟아내버리고 싶어.
나는 내 방으로 가서
SMG 한 자루를 들고 왔다.
목재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지휘관, 그 총은……."
물론 나는
"언니의……."
눈앞에 있는 아이가 더 매력적이다.
"'우리'를 속였구나?"
뭔가를 약속한 기억은 없는데.
"이럴 거면 왜 굳이 언니를 구한 거야?"
그녀의 깨문 입술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언니도, 그리고 나도 속였어. 성스러운 임무니 어쩌고 하면서."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수많은 ppsh41 중 하나야. 네 언니가 아니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네 목울대에 피가 몰린 게 보였다.
"피는 커녕 연관도 없는 인형끼리 가족놀이는 무슨."
물론 그건 피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총을 가져왔다.
"나는 ppsh41의 후속 모델이야.
우린 가족이고, 동지야."
그리고 화를 못이겨
울기 시작했다.
"그 앤 내 언니라고."
"다른 전술인형처럼
자매로 설정될 걸 고려해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그 애는 내 언니였고,
난 그 애의 동생이었다고……."
흐느껴우는 등이 아무리 작아도
ppsh41전술인형의 왜소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그 우는 소리에 맞춰
들썩이는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차라리 구호하지 말지 그랬어."
더듬더듬,
물기 묻은 가정법의 언어.
"그랬으면 그 애는
지휘관 말처럼 수많은 ppsh41중 하나고
나 역시 그냥 pps43이었을 텐데."
새된 을음소리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ppsh41의 목소리가 들릴듯 말듯 했다.
처분 당한 인형이 어떻게 될까.
사회에 환원된다고 하지만
그 많은 인형들이 전부 그럴 리 없단 건 알고 있다.
pps43은 다신
제 언니를 보지 못할 테고
지휘관이 페페샤를 아낀단 소문은
작은 반지 하나로
더 이상 소문이 아니게 되었다.
페페샤는 반지를 상자 채로 받아들었다.
"늘 ppsh41 언니만 생각했었는데."
반지를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난 어른 되긴 글렀나봐. 지휘관."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
서약이란 말이 아깝게
싱거운 끝이었다.
페페샤는 그 뒤로도 반지를 끼지 않았다.
페페샤가 지휘관의 서약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휘관이 페페샤 따위한테 놀아난다는 소문도.
페페샤가 그 정도로 나쁜 아이라면
이리 가벼울 리 없는데.
나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pps43, 지휘관 님이 널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재치있게 도와드리렴."
"응, 언니."
나는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있잖아…… 언니…… 혹시 지휘관 좋아해?"
'앗'하는 소리와
새빨갛게 물든 언니의 옆모습.
"지휘관도 언니 좋아할걸?"
"얘가 무슨. ……지휘관 님은 널 부관으로 두셨는걸."
"하지만 언니는 우리 언니잖아!"
날 좋아하는 사람이
감히 우리 언니를 안 좋아할 리 없다는
묘한 오만함.
언니는 쓸쓸하게 웃으며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우리 동생 말대로
정말로 그랬음 좋겠다."
그냥 차라리 그랬음 좋았을 텐데.
약한 무기는 배제된다.
ppsh41이란 총은 이제 약하다.
언니가 없어진 이유.
언니가 언니인 이유.
내가 ppsh41보다 강한 pps43이기 때문에.
내가 언니의 동생이기 때문에.
이 자매 놀이가 끝나버린 것이다.
"지휘관은 날 왜 부관으로 뒀어?"
"너는 늘 질문만 하는 것 같구나. 페페샤."
지휘관이 나른하게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넌 가벼웠으니까."
그리고 텀을 두고 다시 말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가벼워졌고."
"……그래?"
지휘관은 대답없이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렇다면 지휘관,
지휘관이 나의 가벼움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지휘관이 내 성능에
별 관심이 없었더라면.
지휘관은 언니를 사랑했을까?
언니를 곁에 두었을까?
'우리'가 계속 자매일 수 있었을까?
있잖아, 지휘관.
내가 정말 가벼워서 좋아?
난 그 장점이 싫은 것 같아.
언니의 무게감을 사랑했던 것 같아.
나는 pps43으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알아, 지휘관이 나한테 많은 노력을 쏟은 거.
그렇지만 나 더는 재치있게 못하겠어.
혐오스러운 일이지.
위대한 전사가 자매놀이 때문에
성스러운 전장을 이탈하다니.
언니도 날 미워하겠지.
그러나 난 알아.
언니는 누구보다 전장을 무서워했어.
수많은 ppsh41 중
나의 언니만은 전장을 무서워했어.
언니가 말했지.
서약을 받은 인형은 용감해진다고.
강해진다고.
언니는 서약을 받진 못했지만
가장 용기있는 아이였어.
그러니까 지휘관.
차라리 내 모든 걸 줄게.
pps43인 날 줄게.
반지는 언니의 것이야.
이 소대에서 가장 용기있던
그녀의 것이야.
페페샤의 편지는 여기까지였고.
pps43의 총과 함께
지휘부 책상에 놓여있었다.
처음 쥐어본 그 총이
참으로 가벼워서.
페페샤가 남기고 간
'자신'이라는 게
그리울 정도로 가벼워서.
작은 반지를 아무리 올려도,
5g 추가 얼마든지 있어도,
부족할 정도로 가벼워서.
MP40을 다시 부관으로 들였다.
부관 숙소의 페페샤의 흔적은 순식간에 정리하였다.
"그녀는 배신자인가요?"
MP40의 말에 나는 조금 말문이 막혔지만
"아니."
가까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단지 내 방에 총 두 정을 마련했을 뿐이야."
'ppsh41 언니! 지휘관이 이거 전해주랬어!'
언니가 볼을 붉히며 받아들 거야.
'지휘관이 직접 오셨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운 듯 말하다가도
다시 웃으면서
'고마워, pps43'
이라며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겠지.
언니, 소대 밖은 어때?
총의 넘버링이 아닌
쉬운 이름으로 불리는 느낌은 어때?
언니, 다시 만나면
아직도 지휘관 좋아하냐고
물어봐도 돼?
만일 아니라면
이 반지를
내 것이라고 거짓말 해도 돼?
내가 언니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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